12 12사태 알아보기
서울의 봄 관객 수가 천만명을 앞두고 있는 지금 전두환이 일으켰던 12.12사태 쿠데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 사건은 어떤 사건이고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2 12 사태란?
20203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층에게는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에 일어난 1979년 1212 사태가 생소할 것 입니다 1212 사태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일으킨 군사 반란 입니다이처럼 당시 군사반란인 쿠데타를 통하여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 육군 소장 입니다
12 12 사태 배경
1212사태가 일어난 원인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후 전두환, 노태우 등이 포함된 신군부세력이 군부 내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육군참모총장이며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연행하고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최규하를 협박해서 이를 승인 받으면서 일어났습니다.
10.26사건이 일어나 박정희가 암살된 후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양측은 주도권 장악을 위해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때 전두환을 중심으로한 신군부세력은 정승화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에게 돈을 받았다고 주장을 하면서 정승화를 강제로 연행합니다.
그리고 정승화의 연행에 대해서 저항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부 육군장성들은 이미 신군부세력의 계획에 의해서 요정에 초대되어 있는 상황으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연행이 되었지만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지휘할 수 없게 됩니다.하지만 당시 이러한 모든 사건은 대통령인 최규하의 허락이 없었기 때문에 명분이 없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의 연행을 재가하도록 강요하였고 결국 최규하 대통령은 13일 새벽 정승화 총장의 연행을 재가하게 됩니다.
결과 1979년 12월 13일 오전 9시 노태우(9사단장)와정호용(50사단장)은 각각 수경사령관, 특전사령관에 취임하면서 군부는 반란 주도세력에 의해 장악되어 버립니다.
12 12 사건 재판 결과
12·12, 5·18 사건 재판 1심에서는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무기징역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고등법원은 전두환의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감경했으며 대법원은 12·12 군사반란에 대해서 전두환과 노태우 등에게 반란죄를 인정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군사반란과 내란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을 개정하고 그 헌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해 왔더라도 그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